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팔가르 해전 (문단 편집) == 결과 == 영국 함대의 선박 중 격침된(다만 콜링우드 전대에서 선두에 선 군함 몇 척은 큰 손상을 입었다) 함선은 단 한척도 없었던 반면, 프랑스-스페인 함대는 합쳐서 1척이 격침당하고 22척을 나포당하는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나포한 함선의 태반은 곧이어 들이닥친 태풍에 의해 침몰하는 바람에 영국 해군이 크게 증강되지는 못했다. 그 중에서 당시 최대의 화력을 자랑하는 전열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의 손실은 영국도 아까워했다. 르두터블도 이 때 침몰했다. 여담으로 나포 선박 중 유일하게 해피 엔딩을 맞이한 선박도 있었다. 스페인 함선이었던 알헤시라스(Algesiras)에 탑승했던 영국 해군의 나포조 수병들은 폭풍우가 너무 심해서 자신들만으로 함선을 운용할 수 없자, 하는 수 없이 갑판 밑에 수감했던 스페인 승무원들을 석방해야 했다. 당연히 이 스페인 승무원들은 배를 조종해 카디스 항구로 도망쳤다. 그나마 카디스에 입항한 뒤엔 영국군 나포조 수병들을 포로로 잡지 않고 영국 측에 인계해줬다고 한다. [[파일:Collingwood_Monument1.jpg|width=400]] 커스버트 콜링우드 경의 동상. 그는 넬슨이 전사하자 함대의 지휘권을 넘겨 받아 폭풍 속에서 함대를 보존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게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대손실을 가려주지는 못한다. 일단 격침당하거나 침몰당한 함선을 제외한 나머지 함선들은 탈출에 성공했다지만 양국은 3,238명이 전사하고 2,53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약 8,000명이 포로로 잡혔다는 것이 더 뼈아픈 상처였다. 함선이야 다시 건조하면 되지만 숙련된 선원은 그렇게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의 프랑스 함대나 스페인 함대는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의 선원 숙련도보다 크게 떨어지는 선원들로 함대를 구성해야 했다. 포로 중에는 함대 총사령관인 빌뇌브 제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석방된 후 3개월이 지나 어느 호텔방에서 점심 식사 후 식사용 나이프로 자살했다. 식사용 나이프로 자살을 했다는 점에서 자살이 아닌 타살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당시의 나이프는 육류를 썰어먹기 좋게 끝이 뾰족한 식칼에 가까웠기 때문에 자살하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가능했다. 더욱이 타살설은 식사용 나이프로 굳이 자기 심장을 찌를 필요가 있느냐는 심정적 정황만 있을 뿐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이 해전에서 영국 해군이 승리한 것 자체는 전혀 대단한 사건이 아니였다 '''프랑스-스페인 함대는 숫자는 많았지만 선원들이나 장교들이나 거의 경험을 쌓지 못해서 질적으로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군이 졌다면 그게 더 기적에 가까운 일이였다. 당시 영국 해군 승무원과 연합함대의 숙련도를 비교해보면 질적 차이가 확연히 나는 것이 대포 사격술만 해도 영국 해군은 1분에 1발씩 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프랑스 해군은 2분에 1발, 스페인 해군은 프랑스 해군보다 더 심해서 3~4분에 1발을 쏘는 등 뒤떨어지는 숙련도를 보였다. 근거리에서 교전이 이루어졌던 당시인 만큼 명중율은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영국 해군은 똑같은 포문이어도 상대방보다 3~4배 높은 화력을 낼 수 있었다는 소리이다. 대포의 점화방식도 차이가 나서 영국은 부싯돌, 프랑스의 경우 심지를 사용한 탓에 함선이 흔들거릴 때의 발사 명중률은 격차가 더 컸으며, 사격교리마저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당시 영국은 풍상에서 선체 사격을 선호했고, 프랑스의 경우 풍하에서 돛대 사격을 선호했는데, 전자는 선체를 직접적으로 타격, 후자는 마스트와 상부 구조물을 노려 전체적인 전투력 저하를 유도하는 식이었으나, 당시 대포의 정밀도를 보면 전자가 제일 효율이 높았다. 단, 풍하에서 돛대사격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쏜다는, 위치 상의 특성 덕에 전장이탈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마침 주로 쏘게 되는 부분도 적함의 돛 부분이니 도망치기엔 더할 나위 없다. 양과 질 모두 압도적인 강자로부터 함대의 전력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선 합리적인 교리인 셈. 트라팔가르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문제는 단순히 포격대상이 선체냐 돛대냐가 아니라 해군 장병들의 기본적인 훈련도 자체가 너무 떨어져 있던게 근본적인 문제였다. 거기다 조함술까지 비교하면 연합함대는 출항하는 데만도 만 하루가 지났는데 완료를 못한 참 할 말없는 수준을 드러내었다. 이런 영국 대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의 현격한 전력차를 보여주는 것이 트라팔가르 해전 바로 직전에 벌어졌던 피니스테리(Finisterre) 해전이다. 이때 함대 최후미에 있던 함장 불러(Sir Edward Buller)가 지휘하는 80문짜리 2단층 전열함 몰타(HMS Malta)는 짙은 안개 덕분에 멋모르고 적함대 대열에 들어갔다가 혼자서 5척의 적함을 상대하게 되는 압도적 전력 차에도 불과하고 오히려 84문짜리 스페인 전함 산 라파엘(San Rafael) 및 74문짜리 스페인 전함 피르메(Firme)를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고 그 과정에서 전사자 5명, 부상자 40명이라는 경미한 피해밖에 안 입었다. 그 이유는 몰타가 영국 해군에서도 소수만 존재하던 양현 동시 대포사격 훈련이 되어있던 배들 중 한척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몰타는 선체 일부의 손상이 조금 심해서 전투 후에 수리를 필요로 했다고 한다. 참고로 몰타는 원래 나일 해전에서 최후반에 패배가 확정되며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던 빌뇌브 제독이 타고 있었던 프랑스제 80문 2단층 전열함 기욤 텔이라는 전열함인데 나중에 영국 해군에 나포되면서 몰타로 이름이 바뀌었다. 프랑스제 2단층 80문함은 영국제 98문함과 길이와 배수량 무게 등의 크기가 실제로 비슷했다고 한다. 포문수에서는 열세지만 프랑스제 80문 전열함의 경우 60문 정도가 36파운드 포와 24파운드 포라서 대구경 대포 탑재비율은 의외로 높았다. 나머지 20문은 8파운드 포나 12파운드 포. 영국제 98문 3단층 전열함도 60여문 정도가 32파운드포와 18파운드 포였으며 나머지 30여문은 8파운드 포나 12파운드 포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해군이 아무리 여러가지 장점으로 2단층 전열함을 선호했다지만 80문 함이면 98문급 함들보다 작은 거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사실은 프랑스 전열함들은 같은 급이면 영국 해군보다 배의 크기가 더 크고 더욱 튼튼했던 이유로 영국제 98문 전열함과 동급의 크기인 80문 급 2단층 전열함을 기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프랑스 해군도 멍청하거나 큰 배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는 게 결론이다. 그 외에 영국 해군과 타국 해군의 능력차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일어난 단함교전[* 함선 간의 1대1 교전.]의 통계인데, 전부 합해서 약 '''200회 일어난 단함교전 중 영국 해군의 패배는 단 5회에 불과'''했다.[* Miller, Broadsides, p.337] '''동등한 입장에서 타국 해군이 영국 해군과 싸우면 승률이 3%에도 못 미쳤다'''는 이야기. 그나마 미국 해군이 좀 선전한 편이었지만 이쪽은 함대의 총 전력 차가 절망적이라... 미영전쟁 당시 '''미 해군에는 전열함이 한 척도 없었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은 최대한 함대 교전을 피하고 사략 행위를 통한 통상 파괴 전술 및 단함 전투를 강요해야 했다. 만약 미 해군이 영국 해군과 대규모 함대결전을 시도했다면 궤멸을 면치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단함교전과 함대간 교전은 다르지만, 결국 수병의 능력은 동등한 상황에서의 교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함대도 결국 개별 함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교전 시 영국 해군과 다른 해군의 질적 차이는 실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소설 [[혼블로워]]를 보면 이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나온다. 프랑스와 스페인 해군은 영국 해군의 한끼 식사거리일뿐...위에서 언급했지만 르두터블 호의 루카스 함장이 백병전 훈련에 집중한 것도 이렇게 능력 차가 많이 나서 비교우위라도 점해보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형국이었으니 역으로 넬슨이나 다른 유능한 영국 제독이 입장이 바뀌어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지휘했다고 해도 승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얼마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수준이 처참했냐면. 상황이 꼬여 빅토리 호가 정확히 종사를 얻어맞을 위치에 도착하자 빅토리 호를 끝장낼수 있는 일제포격을 가했는데 '''포탄이 전부 하늘로 날아가서 돛과 삭구에 손상을 입히는게 끝''' 이였을 정도다. 영국 해군도 빌뇌브의 도주 능력을 위협적으로 봤지 일단 잡히면 끝 인 정도로 취급했으니 말 다했다. 사실 넬슨의 중단돌파 전술은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사실상 실패에 가까운 전술이였다. 별 피해도 없이 이길수 있는 전투였음에도 영국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특히 빠른속도로 돌격해서 난입한다는게 중단 돌파 전술의 핵심이였는데, 당시 영국 함대의 전열함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한 상태였다. 오랜 기간 프랑스 해군을 봉쇄하느라 바다에서 시달려온 배들을 정비할 시간도 없이 긁어모은지라 돛, 활대, 삭구같은 소모품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교체할 재고도 넉넉치 못한 형편이라 제 성능을 내기 어려웠다. 흘수에 달라붙은 따개비 같은 생물체들 때문에 속도도 대폭 저하되어 최근 선저 구리판을 교체한 배와 못한 배의 속력차이가 눈에 띌 정도였다고. 당연히 식량, 식수도 아슬아슬한 형편이였고 심지어 이런 소모품이 너무 부족해서 아예 보급을 위해 회항시킨 전열함들도 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조준해서 포격을 퍼부을수 있었다면 영국 해군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테니 연합함대의 처참한 실력이 아니였다면 영국군은 대패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닥돌한 이유는 당시 넬슨의 입지가 상당히 위험했기 때문. 당시 넬슨은 불륜중이였고 본처와 이혼하고 상간녀와 혼인한다는 정신나간 짓을 시도하고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 넬슨이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곤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전에 대해 모르는 상류층 일부와 서민층의 인기였지 해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기는게 당연한 전투'에서 이겼던 사람일 뿐이였다] 하류층들을 제외하면 입지가 애매한 상태였고 [* ~~불륜한 놈이 왕해먹는 나라가 된~~ 지금이라면 모를까, 당시 체면을 굉장히 중시 여기던 영국 상류층에서 대놓고 그런짓을 벌인다는건 사교적 자살행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적 지위와 경제적인 위치를 확고이 하기 위해서는 단 한척도 살려보내지 않는 대승리가 필요했다. 이미 넬슨은 자기 실책 때문에 빌뇌브의 함대가 출항하는걸 막지 못하고 추격도 실패한 상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말 역사적인 대승리를 하지 못한다면 파국은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도박수를 던질수밖에 없었다 빌뇌브의 지휘를 평가해보면 원래 목표 자체가 그 당시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내용이었고, 그럼에도 미숙련된 함대를 이끌고 카리브 해를 왕복해서 넬슨을 오판하게 하고 넬슨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성공한데다가 넬슨이 기존 전열전술 대신 함대를 분열후 각개격파하는 전열 파괴 전술을 쓸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측했으니 나름대로 유능한 지휘관에 속했다. 단지 그가 지휘해야 할 함대의 훈련수준이 저급이었으니 다 알고 있어도 절대 불가항력이라 제독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상황을 뒤집기가 역부족이긴 했지만. 그러나 함대 지휘관의 의무에 조함 훈련 및 수병들의 조련 등을 진행하고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